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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174개의 글이 있습니다.
  • 174
    주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답고 귀여운 일꾼이 됩시다
    주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답고 귀여운 일꾼이 됩시다   얼마 전 유튜브 채널에서 우연히 키네신 단백질에 대한 영상을 보았습니다. 아마도 제가 가끔 과학 채널을 보니 알고리즘이 작동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키네신 단백질이 우리 세포 안의 ‘택배기사’, 또는 ‘가장 귀여운 단백질’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신기해서 영상을 끝까지 보았습니다.   키네신(kinesin)은 세포 내에서 생성되는 아데노신 삼인산(ATP)의 에너지를 이용해 미세소관이라는 고속도로를 따라 움직이며 단백질, 소포, 세포기관 등의 화물을 세포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운반하고 세포분열을 돕는 운동 단백질이라고 합니다. 나노 단위로 촬영할 수 있는 장비로 그 모습을 보면, 마치 두 발로 걷듯 미세소관 위를 이동하며 필요한 곳에 영양분을 배달합니다. 자신보다 훨씬 큰 화물을 운반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충실한 일꾼을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몸이 날마다 새로운 활력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큰 기관들이 제 역활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기관들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쉴 새 없이 일하는 작은 단백질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공동체나 사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눈에 보이게 앞에 서서 일하는 사람이 중요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수고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회사도, 사회도, 나라도 움직이고 기능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돋보이지 않아도 내가 선 자리에서 열심히, 내게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돋보이지 않으면 스스로를 드러내려 하고,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실망하여 섬김의 동기를 잃어버리지는 않습니까?   키네신 단백질은 나노 현미경으로 보아야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그 존재조차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섬김도 마찬가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든지 우리의 마음과 삶의 자세를 아십니다.   오늘 우리의 충성이 다시 예수님을 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이기 때문에 그 일을 맡기신 주님께 충성하는 것. 그래서 주님 보시기에 가장 ‘아름답고 귀여운’ 그리스도의 일꾼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26년 9월 20일박일룡 목사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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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3
    파도가 올 때는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파도가 올 때는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지난 노동절 연휴에 교육부 가족 캠핑을 가졌습니다. 최근 있었던 일들로 그대로 진행할까 하는 고민도 있었지만 아이들을 격려하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며 보듬어 주는 시간이 될 것 같아 함께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웃기도 하고, 마음을 나누며 울기도 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월요일 아침에는 가까운 San Onofre State Beach까지 하이킹을 갔습니다. 태풍의 영향으로 파도가 높다는 경고가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서핑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핑보드를 타고 밀려오는 파도를 넘어 서핑하기 좋은 곳까지 나아가는 모습이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파도가 밀려오면 서퍼들은 고개를 숙여 파도를 피합니다. 그래도 파도에 밀려 뒤로 밀려납니다. 그러면 다음 파도가 오기 전에 양팔을 힘껏 저어 앞으로 나아갑니다. 다시 파도가 오면 고개를 숙이고, 파도가 지나가면 다시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을 반복하다 보니 결국 서핑하기 좋은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도가 밀려올 때는 파도와 맞서 싸우려고 하기보다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파도가 지나가고 잠시 잔잔해진 순간에는 다시 힘껏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파도에 밀려 뒤로 물러나기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면 결국 목적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여러 가지 파도가 밀려옵니다. 우리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와 고난이 갑자기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모든 것을 내 힘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 고개를 숙이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파도는 반드시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잠시 허락하신 평온한 순간에는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다음 파도가 찾아오면 다시 하나님을 의지하고 고개를 숙이고, 파도가 지나가면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믿음으로 나아가다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목적하신 곳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파도를 너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파도가 올 때는 고개를 숙이고 하나님께 엎드리십시오. 때로 뒤로 밀려난 것처럼 느껴져도 그것이 실패는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주님을 의지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이기도 하고, 열심히 팔을 젖기도 하면서 앞으로 한 나아갑시다. 그러면, 결국 주님께서 예비하신 그 영광의 나라에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2026년 9월 13일박일룡 목사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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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2
    지구의 그림자는 지나가고 결국 다시 달빛은 빛날 것입니다
    지구의 그림자는 지나가고 결국 다시 달빛은 빛날 것입니다   최근 네팔에서 비도 오지 않았는데, 제 평생에 한 번도 보지 못한 규모의 홍수가 밀려와 도시와 건물, 사람들을 휩쓸어 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난 주말 저희 교회 공동체에서도 이와 같은 산사태처럼 밀려드는 고통과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이런 일을 일으킨 사람들은 물론이고, 갑자기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 일을 당한 배우자들과 자녀들도 그 고통에 압도되어 밀려가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난 주일 아침 주일 예배를 준비하기 위해 목양실에 도착했는데,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아 한참을 울었습니다.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과,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자책, 그리고 분노와 안타까움, 슬픔과 좌절감이 산사태처럼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그렇게 주일 저녁 포도원 워크숍을 하면서, 최근 감사했던 것을 하나씩 나누라는 테이블 토크 주제가 주어졌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어떤 감사가 있을까 생각해 보았는데, 지난 과테말라 단기선교 마지막 날 선교센터에서 보았던 월식이 생각났습니다.   마지막 날 예배를 드리기 위해 선교센터 숙소 리빙룸으로 가는 길에 바라본 달은 너무나 청량하고 밝은 보름달이었습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나누며, 선교사님 부부를 위해 기도도 드리고 서로 격려하며 모임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조금 전까지 보름달이었던 달이 어느새 초승달처럼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구름에 가렸나 생각하여 다시 자세히 보니, 주변에는 구름 한 점 없었습니다. 혹시 월식인가 하는 생각에 구글 검색을 해 보니, 그날 밤 과테말라에서 월식이 있다는 뉴스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너무나 놀라 대원들에게 알렸고, 우리는 모두 센터 잔디밭으로 나와 하늘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우주쇼를 바라보았습니다.   월식은 지구의 그림자에 달이 가려지면서, 달이 반사하는 태양빛을 우리가 보지 못하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졌던 달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결국 다시 보름달로 돌아옵니다.   감사 주제를 생각하면서 문득 그때의 감동이 떠올랐습니다. 선교의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선물처럼 느껴졌었는데, 돌이켜 보니 그 후에 찾아올 폭풍우의 그림자도 결국 지나가게 되고, 다시 밝은 달빛이 떠오를 것이라는 하나님의 메시지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때도 감사했고, 다시 생각해 보아도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졌어도  결국 그 그림자는 지나가게 될 것입니다. 아름다운 달빛은 다시 밝게 빛나고, 여전히 우리의 밤하늘을 밝혀 줄 것입니다.   2026년 9월 6일 박일룡 목사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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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1
    질병의 치유보다 더 큰 은혜
    질병의 치유보다 더 큰 은혜   지난 과테말라 단기선교 중에 노방전도 하던 중 현지 여성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카톨릭 신자인지 개신교 신자인지 여쭈었더니 개신교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언제부터 교회에 다니셨느냐고 물으니 약 20년 전부터 다니셨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병으로 고통받고 있었는데 기도하는 가운데 병이 치유되는 은혜를 경험한 후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영접한 후 지금도 매주 예배를 참석하고 계셨고, 구원의 확신도 분명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선교지에서 만나는 현지 성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의 질병이나 가족의 질병이 치유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예수님을 믿게 된 경우가 참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실 때에도 병든 자들을 고치시며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간절히 기도한다고 해서 언제나 질병이 치유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 가운데 놀라운 치유를 경험하지만 어떤 사람은 오랜 시간 기도해도 병이 낫지 않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왜 나의 병은 낫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구원은 단지 질병이 치유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놀라운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치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큰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한 가지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육체의 치유 자체가 우리가 받은 가장 큰 복은 아닙니다.   우리의 가장 큰 질병은 육체의 질병이 아니라 죄와 사망의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그 문제를 이미 해결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받았으며, 언젠가는 질병도 없고 눈물도 없으며 죽음도 없는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치유하시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합시다. 동시에 우리의 기도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의심하지 맙시다. 치유를 받는 것보다 더 큰 은혜는 치유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육체의 생명을 연장하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든, 우리가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어지든, 한 가지 사실을 붇드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큰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을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삶을 선하게 인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2026년 8월 30일박일룡 목사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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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0
    모퉁이의 머릿돌이라도 하나님의 걸작품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이라도 하나님의 걸작품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미켈란젤로의 손에 주어진 대리석은 그의 손을 거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각상으로 변했습니다. 같은 대리석이라도 평범한 건축자의 손에 들려 있었다면 바닥을 까는 대리석이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같은 물건이라도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을 때 기쁨을 느끼고, 가치 있는 인생이 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자신의 성취와 지위를 자랑하기도 하고, 반대로 남들보다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위축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1:42).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예수님은 중요하지 않은 사람, 버려지는 돌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모퉁이에서 예수님은 머릿돌처럼 하나님께 가장 요긴하게 사용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다”고 표현합니다(사 53:2). 이것은 예수님의 외모를 말하기보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를 표현한 말씀입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가치 없어 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통해 가장 위대한 구원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는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요?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는 높은 자리에 올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려고 합니까? 아니면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모퉁이와 구석으로 기꺼이 나아가 그곳에서 하나님께 붙들려 사용되는 것을 기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붙들려 쓰임 받는다는 것은 반드시 세상에서 머릿돌이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눈에는 흠모할 만한 것이 없어 보여도, 이 세상의 어느 모퉁이에서든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향해 가지는 경쟁력입니다. 이번 단기선교팀은 다시 세상이 별로 주목하지 않는 곳으로 나아갑니다. 그곳에서도 세상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학교와 교회, 그리고 아이들을 찾아갑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 자리에서 주님의 손에 붙들려 쓰임 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고귀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2026년 8월 23일박일룡 목사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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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9
    정금 같은 신앙인이 됩시다
    정금 같은 신앙인이 됩시다 사람들은 고대부터 금의 가치를 알고 금을 장식품으로 사용했습니다. 수많은 광물 가운데 금이 특별히 귀하게 여겨지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금은 공기 중에 두어도 쉽게 산화되거나 부식되지 않습니다. 물에 넣어도 그 성질이 쉽게 변하지 않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찬란한 금빛을 유지합니다. 둘째는 연하다는 것입니다. 금은 쇠와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지 않습니다. 두드리는 대로 변하고 펴집니다. 그래서 금은 여러 모양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장식품으로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변하지 않으면서도 유연한 것, 이것이 금을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했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정금같은 신앙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에는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복음에 대한 확신은 시대가 변한다고 해서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가치관이 달라져도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진리는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신앙에는 유연함도 필요합니다. 유연하다는 것은 진리를 타협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변하지 않는 진리를 가지고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지혜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형편을 이해하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사랑으로 섬기고, 복음을 전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찾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타협하지 않으셨지만, 사람들을 대하실 때는 매우 따뜻하고 유연하셨습니다. 어린아이를 품으셨고, 죄인들에게 다가가셨으며, 각 사람의 형편에 맞게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았지만, 그 진리를 전하는 방법에는 유연함이 있어야 합니다. 변하지 않는 진리와 유연한 사랑: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정금 같은 신앙의 모습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두드리시고 연단하실 때, 그 과정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더욱 순결해지기를 바랍니다. 변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사랑으로는 부드럽게 살아갑시다.그러면 어떤 시련 속에서도 빛 잃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아름답게 빚어지는 정금 같은 신앙으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2026년 8월 16일박일룡 목사 
    202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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