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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167개의 글이 있습니다.
  • 167
    예수 중독자
    예수 중독자 요한계시록은 세상이 점점 더 악해질 것을 보여 주면서도, 결국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할 것을 선포합니다. 계시록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권세를 짐승과 음녀, 그리고 바벨론으로 상징합니다. 이는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이고 세상을 지배하려는 모든 세상 나라의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서 교회에 요구하시는 것은 세상과 같은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성,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영광을 약속하셨습니다. 성도의 승리는 세상을 정복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의 정절을 지키는 데 있습니다. 이 믿음을 삶으로 보여 준 대표적인 인물이 '사랑의 원자탄'이라 불리는 산돌 손양원 목사입니다. 그의 일기에는 「예수 중독자」라는 제목의 시가 적혀 있습니다. 나 예수 중독자 되어야 한다.술 중독자는 술로만 살다가술로 인해 죽게 되는 것이고,아편 중독자는 아편으로 살다가 아편으로 죽게 되나니. 우리도 예수의 중독자 되어예수로 살다가 예수로 죽자. 우리의 전 생활과 생명을 주님 위해 살면 주 같이 부활된다. 주의 종이니 주만 위해일하는 자 되고 내 일 되지 않게 하자. 손양원 목사에게 예수님은 신앙의 한 부분이 아니라 삶의 전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애를 통해 예수님 만을 사랑하고, 예수님 만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예수님으로 살고 예수님으로 죽는 삶은 특별한 사람들만의 부르심이 아닙니다. 목회자나 선교사에게만 주어진 사명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걸어가야 할 삶의 길입니다. 오늘도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욱 풍성히 거하시고, 우리의 생각과 말과 삶이 예수님으로 가득한 '예수 중독자'의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026년 8월 2일박일룡 목사  
    202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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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6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언젠가 TV 프로그램 ‘동물농장’에서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한 길고양이의 사연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 고양이의 목에는 아주 어릴 때 누군가 채워 놓은 빨래줄이 감겨 있었습니다. 새끼였을 때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몸이 자라면서 지름이 3센티미터 남짓한 그 줄은 점점 목을 조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살이 깊게 파이고 피가 날 정도가 되었고, 음식을 먹는 것도, 물을 마시는 것도, 심지어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든 상태가 되었습니다.이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동네 주민들이 제작진에 도움을 요청했고, 마침내 구조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오랫동안 목을 죄고 있던 줄이 풀리는 순간, 그 고양이는 얼마나 큰 해방감을 느꼈을까요?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고양이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품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직접 다가가 손을 내민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 고양이는 고통에서 벗어나 치유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성경 속 하갈도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하갈은 아브라함의 집안에서 가장 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도 그녀의 억울함과 아픔을 헤아려 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녀는 집을 떠났지만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하갈을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광야 한가운데 있는 그녀를 만나 주셨고, 그녀의 상한 마음을 살펴 주셨습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어떤 자리에 서 계십니까? 혹시 목을 조이는 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길고양이처럼,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 때문에 힘겨워 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또는 하갈처럼 누구도 내 마음을 이해해 주지 않고,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는 외로운 시간을 지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하나님은 잘난 사람이나 성공한 사람만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힘 있는 사람들만의 하나님도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흑암에 있는 자들에게 빛을 비추시며 세상의 중심에 있는 자들이 아니라 변방에 있는 자들을 돌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네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편 42:11)우리보다 먼저 우리의 아픔을 아시고, 우리를 찾아오시며, 나타나 도우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우리의 소망은 환경이 아니라, 우리를 끝까지 살피시고 붙드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2026년 7월 26일 박일룡 목사
    2026.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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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5
    성공한 사람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십시오
    성공한 사람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게 하십시오 자녀 교육에 대해 부모들은 늘 많은 고민을 합니다. 모든 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잘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합니다. 과연 "아이들이 잘 되었다"는 말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흔히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을 얻어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녀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에 오르면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렇지 못하면 자녀 이야기를 꺼내기를 주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잘된 아이는 자신에게 유익한 사람이 된 아이이고, 훌륭한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 유익과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된 아이다." 참 인상적인 말이었습니다. 좋은 교육을 받고 높은 지위에 올랐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큰 능력과 영향력을 가지고도 사회에 해를 끼치는 사람들을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만일 부모들이 자녀를 단지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으로 키우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자녀 교육의 목표와 방법도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떠나 사람들이 의지하던 모든 것들은 결국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사 3:1). 재물도, 명예도, 권력도, 하나님을 대신하여 붙들었던 것들은 우리 삶의 참된 기초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자신에게로 초청하시며 쉼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쉼을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고, 그분의 삶을 닮아가야 합니다(마 11:29). 우리는 종종 예수님께 배우기보다 예수님께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배우지 않으면서 예수님이 주시는 쉼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듯이, 예수님을 통해 세상의 복을 얻는 것보다 예수님 자신을 추구하는 삶이 더 복된 삶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세상의 성공을 쫓는 사람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닮아 가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단지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과 이웃에게 유익을 주는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듯이 우리 자신도 세상이 주는 복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추구하는 참된 제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2026년 7월 19일박일룡 목사
    2026.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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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4
    정의가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정의가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 최근 Netflix 드라마 「참교육」이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학교 폭력과 무너진 교권의 현실 속에서 악한 행동을 한 사람들이 마땅한 대가를 치르는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왜 그럴까요?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손해를 보고,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인정받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양심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뒤처지고, 편법을 사용하는 사람이 더 빨리 성공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상처를 준 사람은 잊고 살아가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오랜 시간 아픔을 안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 마음속에서는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도대체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왜 악한 사람들은 잘 살아가는가?”“왜 정직한 사람들은 손해를 보는가?” 사실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만의 질문이 아닙니다. 시편 12편에서 다윗 역시 같은 탄식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 있습니다. 그는 경건한 자가 사라지고, 충실한 자들이 보이지 않으며, 거짓과 아첨이 세상을 가득 채우는 현실을 보며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이나 제도의 완전함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결국 공의로 심판하시고 경건한 자들을 지키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것은 약한 사람들의 자기 위안이 아닙니다. 이것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신앙 고백입니다. 이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세상이 거짓으로 가득해도 정직함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진실을 말하려고 노력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려고 합니다. 때로는 우리도 묻게 됩니다. “정직하게 살아서 무슨 소용이 있는가?” “나도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바로 그때 우리는 다시 하나님께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경건한 자가 사라져 가는 것 같은 시대에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주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참된 안식을 얻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정의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게 됩니다. 십자가는 악이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죄와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정의가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십자가의 승리를 붙드십시오. 나의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붙드십시오.그 믿음이 악한 세상 속에서도 우리를 끝까지 정직하고 경건하게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2026년 7월 12일박일룡 목사
    2026.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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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3
    억울한 것이 있을 때 주께 고하십시오
    억울한 것이 있을 때 주께 고하십시오 요즘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승리한 선수들과 패배하여 탈락한 선수들의 다양한 감정 표현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인 것 같습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라운드에 주저앉는 선수, 기쁨에 겨워 유니폼을 벗고 환호하는 선수, 땅을 치며 원통해 하는 선수, 얼굴을 유니폼으로 가린 채 통곡하는 선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마음속에 있는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은 여러 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기쁨을 표현하면 그 기쁨이 더욱 커질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함께 그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반대로 억울함과 슬픔을 마음속에만 담아 두면 병이 될 수 있습니다. 속상할 때 눈물을 흘리면 다양한 호르몬이 분비되어 스트레스가 완화되고 긴장이 풀리며,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눈물뿐 아니라 우리는 억울함과 분노를 말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마음 속에만 담아 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그것이 화병이 되거나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을 풀어내는 방법에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때로는 감정을 쏟아내는 과정에서 오히려 자신의 분노가 더 커지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분노를 자극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폭력적인 행동으로 이어져 물건을 부수거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파괴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억울함을 표현할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다윗은 성경에서 가장 많은 억울함을 경험한 사람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인격이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설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억울함과 분노를 사람에게 쏟아내기 보다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 하소연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다윗의 시편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자신의 억울함을 하나님께 아뢰는 '탄원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억울함을 솔직하게 아뢸 때 하나님께서는 위로를 베풀어 주십니다. 사람에게만 매달리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신과 사건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또한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될 때, 내가 직접 복수해야 한다는 마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잃어버렸던 기쁨도 다시 회복하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억울한 고난을 친히 당하셨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을 가장 깊이 이해하시고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벧전 2:23). 억울하고 분한 일이 있을 때 사람에게 쏟아놓기 전에 먼저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주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솔직하게 풀어놓을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상한 마음을 위로하시고 다시 기쁨과 평안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2026년 7월 5일박일룡 목사 
    202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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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2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하라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하라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가운데 하나는 단연 아그라에 있는 타지마할입니다. 타지마할은 순백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건축물은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가장 사랑했던 왕비 뭄타즈 마할을 위해 세운 무덤입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그 충격으로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하얗게 세어 버렸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아름답게 끝나지 않습니다. 무리한 건축 사업으로 국고가 크게 약화되었고, 결국 샤 자한은 아들 아우랑제브에게 왕위를 빼앗기게 됩니다. 그는 야무나 강 건너편의 아그라 성에 유폐된 채 여생을 보내야 했습니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그는 매일 밤 강 건너편에 달빛을 받아 빛나는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먼저 떠난 아내를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타지마할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이 바로 아그라 성에서 달빛 아래 바라볼 때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슬픔 속에서 그 아름다운 건축물을 바라보며 생을 마감해야 했던 황제의 모습은, 사별의 아픔이 얼마나 깊고 큰 것인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자주 인용됩니다. 죽음은 이처럼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만큼 큰 고통도 드뭅니다. 또한 인간은 누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살아갑니다.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다른 소식을 전해 줍니다. 히브리서 2장 15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시기 위해” 자신을 죽음에 내어주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도 반드시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선포합니다. 지금은 죽음이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지막 날에는 오히려 사망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의 두려움에 매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 생명을 소유한 사람답게 오늘을 살아가야 합니다. 장차 완성될 부활의 소망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기쁨과 자유를 누리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2026년 6월 28일박일룡 목사
    2026.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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