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칼럼 1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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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칼럼

총 180개의 글이 있습니다.
  • 84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 어릴 적, 제가 무척 재미있게 본 일본 애니메이션 중 하나는 ‘엄마 찾아 삼만리’였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마르코는 돈을 벌기 위해 아르헨티나로 떠난 엄마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홀로 이탈리아에서 아르헨티나까지, 그리고 안데스산맥의 작은 마을까지 찾아가 마침내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소년의 의지는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또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도 비슷한 주제를 다룹니다. 이 영화는 죽음을 무릅쓰고 전장 속으로 들어가 한 사람을 찾아오는 이야기입니다. 네 아들을 둔 한 어머니는 세 아들이 전사했다는 비극적인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아들인 라이언 일병마저 적진에서 연락이 두절된 상황을 맞이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미 행정부는 특수 구출대를 조직해 라이언 일병을 구출하도록 명령합니다.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대원들은 수많은 위험과 마주하며 라이언 일병 한 사람을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 혼란과 갈등을 겪습니다. 그러나 책임을 맡은 밀러 대위는 자신의 두려움을 억누르고 부대원들을 설득하며 끝내 임무를 완수합니다. 비록 그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목숨을 잃게 되지만, 그 희생은 이야기에 깊은 울림을 더합니다. 이 두 이야기는 감동적이지만, 이와 비교할 수 없이 위대한 이야기가 바로 성탄의 이야기입니다.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의 모든 영광을 내려놓으시고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빌립보서 2:6-8). 그리고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서 대속물로 내어주심으로써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누가복음 19:10).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해 삼만리가 아니라 하늘에서 땅으로, 땅에서 십자가로 나아가셨습니다. 사랑받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우리를 위해서 말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말합니다(마태복음 1:23).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찾아오신 예수님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며 세상 끝날까지 늘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태복음 28:20). 이 땅에서 우리는 때로 고난과 슬픔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찾아오셔서 늘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비우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며, 우리를 그 영원한 하늘의 영광스러운 나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번 성탄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의 사랑을 더 깊이 묵상하면 좋겠습니다. 2024년 12월 22일 박일룡 목사
    202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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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
    말의 주장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말의 주장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한 철학자가 무슨 연유에서인지 도둑과 함께 교도소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도둑이 철학자에게 탈옥을 제안했습니다. 이들은 어두운 그믐밤을 틈타 몰래 감옥을 빠져나왔습니다. 지붕 위를 살금살금 기어가던 중, 도둑이 그만 발을 잘못 디뎌 기와장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기왓장 소리를 들은 교도관이 "거기 누구야!"라고 소리쳤습니다. 이에 도둑은 재빨리 "야옹!" 하고 고양이 소리를 냈고, 다행히 위기를 모면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철학자가 발을 잘못 디뎌 기와장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다시 교도관이 "거기 누구야!"라고 외쳤습니다. 철학자는 당황한 나머지 점잖게 대답했습니다. "고양이예요!" 결국, 이들은 둘 다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고양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고양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고양이처럼 행동하거나 소리를 내야 고양이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때로 자신이 누구인지 말로 증명하려고 애씁니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라든지 "나는 이런 것을 추구합니다"라고 주장하곤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정체성은 말로 증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행동으로 보여줘야만 그 정체성이 진정성을 갖게 됩니다. 고양이라고 스스로 주장한다고 사람들이 고양이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처럼, 말만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는 없습니다. 이는 철학자의 자기기만과도 같습니다. 이 유머는 제게 교회의 본질과 성도의 사명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저 역시 주장과 말을 많이 합니다. "교회는 이래야 한다", "성도는 이렇게 해야 한다", "지도자는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우리의 주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합당한 삶으로 증명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 하나님의 자녀임은 말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심을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갈 2:20).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우리는 말보다 삶으로 예수님의 제자임을 증명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깊이 묵상하며, 그분의 마음을 우리의 삶 속에서 나타내길 소망합니다. 2024년 12월 15일 박일룡 목사
    2024.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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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
    비움으로 채우시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자
    비움으로 채우시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자 ‘반지의 제왕’은 인간의 욕망을 주제로 한 소설이자 영화입니다. 이는 세상의 모든 힘을 얻을 수 있는 반지를 차지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입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캐릭터가 ‘골룸’이라는 존재입니다. 골룸은 원래 호빗족이었으나, 반지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본래의 모습을 잃고 기이한 생명체가 되어 죽지도 못한 채 고통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반지가 자신에게 행복을 줄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합니다. 결국 불의 산 용암에 떨어져 죽을 때조차 반지를 손에 쥐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죽음을 맞이합니다. 현대 사회의 많은 병의 원인은 "과함"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과식, 과로, 과욕이 병의 근원이 됩니다. 과함은 언제나 욕심을 채우려는 것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당한 만큼인데, 인간은 끝없는 결핍을 느끼며 끊임없이 채우려 합니다. 마치 채울 수 없는 터진 웅덩이와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더 큰 만족을 얻기 위해 경쟁하며 살아갑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의문을 품으면서도, 현실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가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동양의 미학은 ‘여백의 미’라고 합니다. 동양의 수묵화는 배경을 다 채우지 않고 비워둡니다. 비워둠으로 가득 채워지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삶의 과한 욕망을 절제하고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흐름 속에서, 최근에는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꼭 필요한 것 외에는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욕심에서 자유로워지고, 더 행복한 삶을 누리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조차도 여전히 비우기보다는 채우기 위해, 낮아지기보다는 높아지기 위해, 희생보다는 영광을 추구하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섬김마저도 나를 위한 섬김일 때가 있고, 내가 높아지기 위한 봉사가 될 때도 있습니다. 더 크고 더 성공하기 위해 하나님의 도움과 복을 구하는 모습이 우리의 일상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의 오심을 기념하는 대강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다”고 말씀하십니다(빌 2:7). 예수님의 비움은 자신이 누릴 권세와 영광을 내려놓고, 자신을 낮추어 내어주심으로 자신을 채우셨습니다. 우리 역시 자신의 만족을 위한 욕심을 비우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이번 성탄 시즌이 “예수를 더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히 3:1). 2024년 12월 8일 박일룡 목사
    2024.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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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
    섬김은 성도의 마땅한 삶입니다
    섬김은 성도의 마땅한 삶입니다 지난주, 나바호 벌목사역팀이 무사히 선교 사역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사역은 교회 주변의 죽은 나무를 장작으로 만드는 일과, 교회 옆에 거주하시는 로라 성도님의 집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벌목팀은 작업할 나무를 정하고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다른 팀원들은 로라 성도님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쳅터 하우스에서 보급받은 통나무가 한 트럭 가득 쌓여 있었고, 그 나무들을 장작으로 잘라 보관 창고에 쌓아두는 일이 우리의 첫 임무였습니다. 하루 종일 땀 흘리며 일한 끝에 작업은 거의 마무리되었습니다. 또한 닭장에 모이통과 문을 새로 달아드리며 작은 일까지 정성껏 챙겼습니다. 하지만 로라 성도님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감사의 말도, 웃음도 거의 없었고, 저녁 식사에 초대해 드렸음에도 특별한 리액션이 없었습니다. 팀원들 사이에서는 서운함이 생길 수도 있었지만, 모두 묵묵히 사역을 이어갔습니다. 화요일 사역을 마치고 열린 평가회의에서 한 팀원이 말했습니다. 할머니께서 오후에 작업 현장을 보러 오셨는데, 우리가 나무를 더 잘게 자른 것을 보시고 살짝 미소를 지으시며 돌아가셨습니다는 것입니다. 그 미소는 짧았고 특별한 감사의 말은 없었지만, 그 작은 미소가 우리의 섬김을 기쁘게 받아들이셨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는 자도 결코 상을 잃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팀은 냉수 한 그릇이 아닌 하루 종일의 수고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상을 바라며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감사의 표현이 없더라도, 마음의 위안이 없어도 우리는 섬깁니다. 이미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섬김은 성도의 당연한 삶이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선교적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상이나 인정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는 섬김의 길을 걷습니다. 이번 사역을 통해 우리는 섬김이란 답례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감당해야 할 사명임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가정과 교회를 넘어 이웃을 섬기는 일에 기꺼이 참여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섬김은 그 자체로 성도의 마땅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2024년 12월 1일 박일룡 목사
    2024.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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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
    풀무불 속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풀무불 속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때로는 우리가 간절히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즉각적으로 응답하시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계획이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장래에 소망을 주려는 계획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렘 29:11). 또한,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며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사 41:10-13).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 속에서는 공허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다니엘의 세 친구가 처했던 상황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들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왕의 명령을 거부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풀무불 속에 던져지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자신들에게 잘못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고자질로 인해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었습니다. 심지어 느부갓네살 왕은 분노하며 풀무불을 더 뜨겁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고, 그 결과 그들은 불 속에 던져지게 되었습니다(단 3:23).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들을 풀무불로부터 (from the furnace) 구원하시지는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대신 하나님께서는 풀무불 속에서 (in the furnace) 그들과 함께하셨습니다(단 3:25). 그리고 결국 그들을 풀무불에서 (out of the furnace) 건져내셨습니다(단 3:26). 우리의 기도는 대개 풀무불에 들어가지 않도록 해 달라는 간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이 풀무불 속에서 함께하심으로 더 분명하게 나타났으며, 하나님의 능력은 그곳에서 구원하심으로 더욱 크게 드러났음을 보여줍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고난을 피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풀무불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시 23:4). 우리의 하나님은 길을 잃고 헤매는 양을 위해 스스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내려오셔서 곁에서 지키고 보호해 주시는 목자이십니다.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고난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의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우리의 눈이 문제에 고정되어 있으면 불안과 걱정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돌릴 때,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의 구원과 평안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풀무불에 들어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도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설령 풀무불 속에 던져지는 상황을 맞더라도 믿음을 지키게 해 달라고, 그 안에서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이러한 방향으로 조금씩 변화하기를 소망합니다. 고난 가운데도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분의 사랑과 능력을 더욱 깊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2024년 11월 24일 박일룡 목사  
    2024.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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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9
    내 몸의 가시로 인해서도 감사합시다
    내 몸의 가시로 인해서도 감사합시다맹장의 기능은 많은 의학자들에게 수수께기로 오래동안 남아 있었습니다. 맹장염이 생기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미리 절제하기도 했습니다. 다윈은 초기 인류의 입사귀 소화에 한몫을 했었다는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토끼등의 초식 동물의 맹장이 큰 것에서 착안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2007년 아리조나 칼리지의 헤더 스미스 박사의 연구를 통해서 맹장은 몸의 면역력 증가에 유익한 박테리아의 은신처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맹장이 없어도 인체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맹장 외에도 여전히 몸에 불필요해 보이는 신체 부위들이 있습니다. 어떤 자료에 의하면 몸에 불필요한 7가지 신체부위로 체모, 사랑니, 남성의 젓꼭지, 꼬리뼈, 귀근육, 입모근, 부비동을 꼽습니다. 아직 그 기능을 우리가 다 알지 못하지만 맹장의 경우처럼 몸에 필요 없는 부위는 없을 것입니다. 남성의 젓꼭지도 누워있을 때 등인지 배인지 구분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합니다. 교회 공동체도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몸의 지체들이 다 소중합니다. 그런데 간혹 사랑니나 남성의 젓꼭지처럼 그 기능을 도저히 모를 지체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없어도 괜찮은 지체나 뽑아 내어야 할 지체도 있어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동체가 몸과 다를 바 없는 것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몸에 “가시”가 있었고 그것을 제거해 주시기를 세번이나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한 적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뽑아 버렸으면 하는 몸의 부분이었던 것입니다. 없었으면 하는, 고통만 주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제거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가시’로 인하여 바울은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은 복음의 능력이 더 강하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뽑아 버렸으면 하는 몸의 가시도 하나님께서 선하게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가시로 인하여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내 인생의 가시는 무엇입니까? 가족 중에, 교회의 지체 중에 내게 늘 마음의 불편함과 고통을 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 삶에 가시와 같은 현실은 무엇입니까? 제거해 주시기를 지금도 간절히 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도무지 용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신체 부위도 이유가 있습니다. 제거해 버리고 싶은 가시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유익을 주고 계십니다. 이번 추수감사절엔 ‘나의 가시’로 인해서도 감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시가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를 통하여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시고,  고통속에서도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깊게 알고 만나게 해주시는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 공동체에 불필요한 지체는 없습니다. 내 삶에 이유없는 고난도 없습니다. 내게 주신 족한 은혜를 내가 붙들고 있으면 말입니다(고후 12:9). 2024년 11월 17일 박일룡 목사
    202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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